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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누레터: 밴드에서 기타 친 얘기

아직은 락 음악이 인기가 있던 2000년대 초반, 수련회 장기자랑에 참가하기 위해 반 친구들끼리 밴드를 급조했습니다. 실력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밴드였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아직은 락 음악이 인기가 있던 2000년대 초반, 수련회 장기자랑에 참가하기 위해 반 친구들끼리 밴드를 급조했습니다. 실력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밴드였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활동(이라고 해 봐야 학예회 공연 정도였지만)을 이어 갔고, 졸업을 하고 각자 다른 지역 다른 학교로 (혹은 재수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진 뒤에도 종종 만나서 합주를 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밴드 멤버 구성이 참 희한했습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은 한 명씩이었는데, 보컬이 무려 네 명이었으니까요. 보컬 2호는 저랑 친하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합류, 보컬 3호는 노래방에서 들은 목소리가 자우림의 김윤아와 비슷해서 합류, 보컬 4호는 원래 첫 수련회 공연 때 드럼을 쳤던 원년 멤버였지만, 새로 합류한 드러머에 밀려나서 보컬로 전향. (그러고 보니 새로 합류한 드러머도 저랑 친하다는 이유로 합류했네요. 뭐 이따위 팀이 다 있어?)

그런 오합지졸 밴드였는데, 어디서 용기가 솟아났는지 겨울방학에 2시간짜리 단독 공연을 하겠다고 홍대 앞 공연장(지금은 없어진 쌈지스페이스 지하 ‘바람’)을 하루 대관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스물에서 스물하나로 넘어가던 겨울 제 머릿속 관심사는 온통 공연 뿐이었습니다. 어떤 곡을 하면 좋을까, 이펙터를 어떻게 조합해야 소리가 예쁘게 나올까, 이 곡은 나한테는 좀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실수 없이 연주할 수 있을까 등등…

공연 세트리스트에는 보컬 한 명당 5곡씩, 총 20곡을 올렸습니다. 저는 밴드의 메인 기타리스트였는데, 그 말인즉슨 저는 20곡을 전부 연습하고 외우고 익혀서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여태껏 한 번에 4곡 이상 공연해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흠모하던 순이(가명입니다)도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는데, 그 앞에서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 제 마음이 온통 공연에 쏠려 있을 수밖에요.

그렇게 굳은 각오를 품고 방학 내내 매일같이 합주실에 모여 2~3시간씩 연습을 했습니다. 합주가 없는 날에는 집에서 개인 연습을 하거나, 세트리스트의 곡들을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외우곤 했습니다. 자작곡 하나 없이 카피곡만 공연하는 스쿨밴드 수준의 팀이었지만, 평생 이렇게까지 한 가지 목표에 미친 듯 몰두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돈이 나오는 일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는지… 지금 돌아보면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하지만 스물에서 스물하나로 넘어가는 청년들이 하는 일이 늘상 그렇듯, 공연 준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일부 곡에서 세컨 기타를 맡기로 했던 멤버는 첫 합주 날 저의 갈굼(‘박자가 틀렸다’, ‘개인 연습도 안 하고 합주실에 와서야 연습을 시작하면 어떡하냐’ 등등)을 듣고는 다시는 합주실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출중한 가창력으로 밴드의 흥행을 담당했던 보컬 1호(당시 재수 중)는 대학 입시 결과가 나온 1월 어느 날 ‘나는 삼수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공연은 도저히 못하겠다’라며 연습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팀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겨우 다시 합류했지만, 연습 부족으로 가사를 외우지 못해서 손에 가사지를 들고 공연을 해야 했습니다. 
멤버 이탈만큼 큰일은 아니지만, 선곡 과정에서 음악 취향 차이 때문에 멤버들끼리 신경전을 벌인 일도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팀이 깨지지 않고 공연까지 마친 게 용합니다. 어쩌면 매번 연습을 마치고 함께 갔던 (지금은 사라진) 신촌역 3번 출구 앞 맥도날드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겨울방학이라 손님이 뜸한 맥도날드 지하를 차지하고 앉아서 먹고 떠들다 보면 합주실에서 쌓인 긴장이 풀리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몸과 마음을 탈탈 털어 준비한 공연이었는데, 본 공연 2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멀쩡하던 기타줄이 공연 중에 끊어지는 바람에 (곡명도 하필 ‘뭐야 이건’) 현장에서 급하게 다른 기타를 구하느라 정신은 없었고,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있으니 객석은 잘 보이지도 않고, 객석이 보이지 않으니 순이는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2시간이 휘리릭 지나간 겁니다. 
어쨌든 앵콜곡까지 모두 마치고, 밴드와 관객들(이라고 해 봐야 친구들과 선후배들이었지만)이 어우러져 인사를 나눴습니다. 멤버들끼리 수고했다며 서로 악수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애인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기도 하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공연의 여운을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친하게 지내며 함께 공연도 했던 선배가 저를 안아주더니, 마치 ‘지금 네 기분이 어떤지 알아’ 하는 것처럼 등을 토닥여 줬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감정 동요 없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공연이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났습니다. ‘정말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순간적으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몰두할 목표가 없어졌다, 인생의 큰 즐거움 하나가 사라졌다, 난 이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들을 했던 모양입니다. 

몇몇 멤버들은 나중에 졸업한 뒤에 직장인 밴드를 하자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나요. 공연 이후로 합주는커녕 기타를 잡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고, 멤버들이 차례차례 입대를 하면서 팀은 자연스럽게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드러머를 맡았던 친구가 몇 년 뒤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는 밴드로서는 다시 모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 산울림소극장 앞길을 지나면서, 공연장이 있던 곳을 바라보며 ‘저기서 우리가 공연을 했었지’ 하고 추억하는 수밖에요.

공연 후 15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기억을 돌이켜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그 시간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그건 일종의 불가항력 같은 것이라,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막을 수 없다는 것. 뭐 이런 것들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명백한데 그때는 왜 와닿지 않았을까요.

‘이걸 일찌감치 깨달았다면, 30대까지도 반복해서 겪을 괴로움을 조금은 수월하게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살다 보면 한참 뒤에 되돌아봐야 이해가 되는 일도 있는 법이고, 현명함을 발휘하기에 저는 너무 어렸으니까요. 물론 지금의 저 역시 크게 성숙하지 못한지라, 지나간 날이나 앞으로 다가올 날을 생각할 때면 콧등이 시큰해지곤 합니다.

2020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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