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re Reading

What We’re Reading #218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 생고생(하는 이야기)
자기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투쟁할 때마다 이야기는 발생한다. 더 많은 걸, 더 대단한 걸 원하면 더 엄청난 방해물을 만날 것이고, 생고생(하는 이야기)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바로 그게 내가 쓰고 싶고 또 읽고 싶은 이야기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문학동네(2014), p40.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그러니 애초에 기대를 하지 말자.’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No Pain, No Gain)? 그럴 바에는 애초에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 말고, 고통 받지도 말자(No Gain, No Pain).’
이런 말들은 언뜻 듣기에 매력적입니다. 더 이상 실망과 고통 따위는 겪고 싶지 않은 마음에 쏙쏙 스며듭니다. 이 말들만 따르면 감정 기복 없는 안온한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기대도 실망도 없고, 고통도 성취도 없는 삶은 조금 심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를 예로 들면,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가 서태웅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지도 않고, 소연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면 이야기가 밍숭맹숭했겠죠. 저는 그런 만화는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들끓는 욕망이 사람을 추동하고, 큰 기대와 큰 실망이 반복되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달관한 사람 뿐일 겁니다. 그러니까 안온함을 추구하는 인생관은 노인들에게는 잘 어울릴 수 있어도, 아직 세상사에서 초탈하지 못한 젊은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느 모로 봐도 노인이라고 할 수 없는 저는 그래서 많은 것을 원하고, (생고생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고생하고, (어마어마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발생시키는 경로를 택했습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면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3년 전에 회사를 옮길 때는 이직 사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크고 넉넉한 회사 말고, 초기 스타트업에서 하루하루 쫄리고 스트레스 받는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평소에는 바라는 바가 잘 이뤄지지 않는 편인데, 이런 소원은 어쩜 그렇게 잘 이뤄질까요. 그렇게 말이 씨가 되어 하루하루 쫄리고 스트레스 받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던 어느 날, 작가 김연수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제가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찾는 책입니다)을 펼쳤습니다. 댓 번도 넘게 읽은 책이건만,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새롭게 제 마음을 끌어당기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면 새드엔딩이다. 원하는 걸 가지거나, 가지지 못하거나. 그게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엔딩이 찾아오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이 원하는 걸 얻는지 얻지 않는지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는다. 인생 역시 이야기라면 마찬가지리라. 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 같은 책, p41.

이 말을 마음 속에 새기고 있지만 아직 성공과 실패의 문제에서, 혹은 실망과 고통의 감정에서 초탈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끔씩 이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제 삶을 바라보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쨌든 나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대단한 것을 원하고 있구나. 그 끝에 성공이 있을지 실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삶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구나.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고요.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좋은 이야기가 담기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2019년 10월 25일 금요일
월급날 한층 낙관적인 김민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