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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변호인 말고, 그냥 악마

저는 ‘정반합’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어느 정도로 좋아하냐면, 회의실에서 변증법적 논쟁이 벌어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을 정도입니다. 누군가는 반대/비판 의견을 내고, 그 반대/비판 의견에 대해서 또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예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과 생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이걸 불편해 하고,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안전하게 대세를 따르고 싶어 하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생각하고, 반대/비판 의견이 나오면 ‘저 사람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두 눈을 아래로 내리깔곤 합니다.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아서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침묵하기도 합니다. 반대 의견에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거나, 사회적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금기시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이나 놓친 것을 지적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행동입니다. 잘못하면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고, (‘불편함을 무릅쓰고 말하는 인재를 원한다’라고 말하는 기업들 중에서도 실상을 들여다 보면 ‘불편함을 무릅쓰면 불편해진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말도 있죠) ‘너는 얼마나 잘하길래’ 하는 역공(?)을 당할 위험도 있고, 왠지 나쁜 사람이 될 것만 같고, 이래저래 위험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업무에서도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은 그럴 때 잘못되는 것 같습니다. 한 번만 짚고 넘어갔으면 고쳐졌을 일들이 하나둘씩 고쳐지지 않고 쌓이면… 일이 총체적으로 엉망이 되곤 하죠.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 그때 그 문제를 꺼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물론 비슷한 상황이 다시 와도 똑같이 아무 행동을 않겠지만)

흔히 조직문화에 대한 자료를 보면, 집단사고를 막기 위해서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악마’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과 관계가 불편해질 것을 예상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즐기는 그런 사람. 어쩌면 성공한 사업가들 중 많은 사람이 ‘소시오패스’라는 평가를 듣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닌가 하는 뻘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