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re Reading

What We’re Reading #204 나는 커서 마이너리그 선수가 될 거야

“야구를 시작하면서 ‘나는 커서 마이너리그 선수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없었을 것이다. 모두의 꿈은 메이저리거, 메이저리거 중에서도 화려한 성적을 내고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였을 것이다. (…) 프로 구단에 드래프트된 전체 아마추어 선수는 17,925명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뛴 선수는 1,326명에 그쳤다. 이는 약 7.4퍼센트에 불과하다. 마이너리거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원래 추구하던 것과 다른 것을 얻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2019), p23-24.

지구에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만 35세 전까지는 영리기업에서 열심히 일해서 좋은 경력(과 돈)을 쌓고, 35세가 되는 날 과감히 영리기업을 나와서 비영리 섹터에서 일하겠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임팩트 투자기관 Acumen Fund의 창립자 재클린 노보그라츠의 자서전 《블루 스웨터》를 읽으며 제가 했던 생각입니다. 왜 35세냐고요? 당장은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려면 꽤 오랫동안 일하면서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40살은 너무 늦은 나이일 것 같았고(전국의 40대 여러분 죄송합니다), 35살 정도 되면 충분한 경력(과 돈)이 쌓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고, 모두가 예상하시듯 제가 35살까지 착실하게 경력(과 돈)을 쌓는 일도 없었습니다.

부푼 희망을 안고 인턴으로 들어간 첫 회사에서는 2개월 일하고 정직원 전환 심사에서 탈락 / 그다음 회사에서는 실망스러운 일을 겪으며 8개월 만에 퇴사 / 그다음엔 6개월 / 그 다음엔 8개월 / 그다음엔 (그나마 길게 버텨서) 1년 3개월… 빠르고 잦은 퇴사에다 이직할 때마다 매번 직무까지 바뀌었으니 경력이 쌓이려야 쌓일 수가 없었지요.

동년배의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하나둘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나이가 된 지금, 저는 10년 전에 추구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바라던 그런 삶은 영영 오지 않을 겁니다. 만약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어서 그때의 저에게 지금 제 모습을 보여줬다면, “내가 35살까지 쌓은 경력(과 돈)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라며 절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불행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계획대로 술술 풀린 일은 하나도 없지만, 그때그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결과 제법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로 만족스럽냐면, 이것 말고 다른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램프의 지니가 나타나서 ‘시간을 10년 전으로 되돌려서 네가 원하던 인생을 살게 해주겠다’라고 한다면 지니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2019년판 윌 스미스 지니에게는 아무래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지만).

최근까지는 이런 저의 생각을 ‘궁극의 정신승리 기술’로 치부했는데, 이어지는 글을 읽고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불행했을 리는 없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자기 인생을 살아냈다. 경기에 출전해 최선을 다했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 가정을 꾸렸고, 은퇴한 후에는 코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거나 다른 일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 얻으려던 것(‘메이저리거 되기’)보다 더 소중한 교훈을 얻었(거나 최소한 얻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같은 책, p24.

깊은 깨달음을 얻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계획이 틀어졌음에도 얼마든지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걸 보면 삶이 참 신비롭다는 말도 맞는 것 같고요. 
인생을 계획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비단 저 한 사람만은 아닐 겁니다. 각자가 생각한 궤도에서 조금 이탈하셨더라도, 다들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그러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으신다면,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도 잊지 말아 주세요.

2019년 7월 12일
김민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