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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첫 퇴사

“부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용기를 내서 재무팀 관리자인 L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L부장에게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1주일도 더 된 일이지만,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중국에서 리더십 워크샵을 마치고 돌아온 L부장은 그날따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적어도 30분은 이야기해야 할 주제인데, 그렇다고 미리 면담을 요청할 만한 안건은 아니었다. (만약 ‘무슨 일로 면담을 요청하시나요?’라고 L부장이 물었다면 나는 솔직하게 답해야 했고, 그럼 그 즉시 면담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L부장이 최대한 덜 바빠 보일 타이밍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날을 넘기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날을 넘기게 되었으면 아마도 그날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퇴사하려는 이유가 정말 그거예요?”
L부장이 놀란 표정으로, 그렇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한겨울에 얼음물을 뒤집어 쓴 사람마냥 몸을 떨었고, 그에 따라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이미 말은 내뱉었으니 돌이킬 수 없었고, 돌이킬 생각도 없었다. 
사실 준비는 며칠 전에 마쳤다. 퇴사를 결심하자 마자 덴마크로 가는 비행기 표도 결제했고, 스반홀름에 메일을 보내서 3개월 체류를 확정했다. 퇴사를 미루지 않기 위해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제약이었다. 이정도까지 해 두면 결심을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한 달 반 뒤에 나는 북유럽의 한 공동체에서 주중에는 벽돌을 나르거나 페인트칠을 하며 밥값을 하고,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며 그동안 모은 돈을 거덜낼 예정이었다. 필요한 것은 중국에 가 있던 L부장과의 퇴사 면담 뿐이었다. 그러니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몸은 덜덜 떨리더라도 용기를 쥐어짜서 말할 수밖에. 

1주일 전에 사무실에 그 전화가 걸려 왔을 때, 나는 야근 중이었다. 왜 야근을 했더라? 그때는 그냥 야근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뭐라도 열심히 하고 인정 받아서 샹하이로 런던으로 암스테르담으로 트랜스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날 야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전화가 왔는 줄도 몰랐을 테고, 계속 그 회사에 남아서 열심히 일했을 거다. 샹하이 런던 암스테르담에 갔을지 어땠을지는 몰라도, 나는 꽤 그 일에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L과장은 전화를 끊자 마자 사무실에 있던 재무팀 사람들을 불러서 소식을 전했다. 그 회사에서만 십몇년을 일한 회계의 달인 K차장은 자기도 이런 일을 처음 겪어 본다며 난처해 했다. 난처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과 가장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한 회사였기에 허탈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재무팀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진짜로 이대로 진행하면, 저는 퇴사할 거예요.”

그 후에는 일이 “진짜로 이대로 진행”되었다. 그냥 진행된 정도가 아니고,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일사불란하게 처리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닫혀 있어야 하는 서버가 열리고, 자료를 입력하고, 다시 닫히기까지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일을 마치기 위해서 며칠에 걸쳐 치밀한 계획이 이메일로 오고갔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어쩌면 샹하이 런던 암스테르담 사람들도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만 그 일이 일어났더라면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더 이상 회사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퇴사하겠다고 팀에 공언했으니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확실한 미래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미래를 선언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커리어에서 고배를 마셨던 나는, 딱 1년 지나서 두 번째 실패를 경험했다. 지난 번 실패의 원인은 내가 주어진 일을 잘 해내지 못한 데 있었다. 이번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모르겠다. 어쩌면 큰 조직에서라면 모름지기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에 내가 과민반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 일을 겪으며 나는 두번다시 제도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회사에서는 왜 그렇게 금방 나왔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 회사가 그나마 제도권에서는 가장 비 제도권에 가까운 회사였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내가 솔직하게 대답했을 때 나를 제도권에서 받아줄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실패에서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어떤 곳에서 일할지, 어떤 일을 할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두 가지 토대가 무너진 나로서는 커리어 목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했다. 스펙타클한 대실패. 

덴마크에는 결국 가지 못했다. 출국을 보름 정도 앞두고 집안에 생긴 일로 인해서 길게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세 번째 직장을 찾았다. 그것 역시 실패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여섯 달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