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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re Reading #171 ‘해야되는데’ 형 인간

11월이라 연말 결산을 하기에는 때 이른 감이 있지만, 오늘(11월 23일)은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니 저도 덩달아 연말 분위기를 낸다고 해서 흠이 되진 않겠지요. 누군가 저의 2018년 한 해를 집약하는 키워드를 고르라 한다면 단연코, 한 치 망설임 없이, 해야되는데’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해야되는데’의 다양한 용례:
– 운동해야 되는데 
– 책도 읽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 꾸준히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겠다고 다짐했는데
– 주말에 집에서 뒹굴지만 말고 밖에도 좀 나가고 사람들도 좀 만나야 할 텐데
– 중요한 업무를 차일피일 미루는 습관 좀 버려야 되는데 

다양한 레퍼토리는 속에서도 한 가지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으니, ‘결심 → 잠깐 실천 → 얼마 못 가 중단 → 한탄(해야되는데…) → 다시 결심’으로 이어지는 루프(Loop)를 반복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운동해야 되는데’ 하고 한탄할 시간에 실제로 운동을 했다면 올림픽은 몰라도 구청장배 금메달감은 되었겠다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로 제 자신에게 ‘해야되는데 형 인간이라는 칭호를 붙였습니다. 뭘 해야 하는지 알고, 그것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날 결과 역시 잘 알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와중에도 저는 스스로를 명쾌하게 규정하는 개념을 찾아냈다며 즐거워했더랍니다. 유레카, 유레카.)

‘해야되는데 형 인간’으로서 저의 특징은, 틈만 나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방법’이나 ‘좋은 습관을 만드는 방법’ 류의 자료를 찾아 읽어서 이론에는 빠삭하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행동을 21일 이상 지속해야 습관으로 자리잡는다든지,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든지, 다양한 보상을 통해 긍정적 강화를 하라든지, 여하튼 아는 것은 많은데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꾸준한 실천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너무나도 눈부신 일이라, 한낱 인간의 본성에는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는 친구에게 “나는 한 번에 두 개 이상의 목표를 추구하질 못하겠어.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시기에는 공부나 독서를 안 하게 되고, 회사 일에 집중하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운동을 할 엄두가 안 나고… 운동, 일, 공부, 인간관계까지 전부 잘해내는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과한 욕심인 걸까?”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 “야, 목표 한 개도 추구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어쩌면, 또 어쩌면, ‘해야되는데’ 하는 마음이라도 있으니 이렇게라도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다시 결심을 반복하는 것은, 제 나름의 향상심이 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매번 실패하는 결심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자꾸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자신을 조금씩이라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뭐 그런 생각. (상처받기 쉬운 자아를 지키는 데는 정신승리만큼 유용한 기술이 없습니다 여러분.)

올해 남은 한 달도 저는 ‘해야되는데’를 입에 달고 살 겁니다. 아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마찬가지겠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자신의 의지박약을 자책하는 분이 있다면, 여기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2018년 11월 23일 금요일
성수동에서 김 “해야되는데” 민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