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re Reading

What We’re Reading #164 지니어스의 일, 나의 일

퍼블리에 온 뒤로 글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글쓰기라고 해 봐야 저 혼자 읽는 일기장에 끄적이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이 뉴스레터처럼 독자가 있는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독자를 두고 글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쓴 글 중 대부분은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즉,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흘러가 묻혀 버렸습니다. 그렇게 스러져간 수많은 글들이 원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며, 글쓴이를 길동무로 삼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조금 오싹합니다.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 생각지도 않은 글에서 기대하지 못한 반응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하는 인사를 받기도 하고, 이곳저곳에서 글이 회자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특별한 메시지를 담은 글도 아니고, 이제껏 알려진 적 없는 새로운 발견을 담은 글도 아닌데 말이죠.

그럴 때마다 ‘(에헴) 내가 글 쓰는 재주는 좀 있지’ 하고 생각할 정도로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은 못 됩니다. ‘내가 봐도 별 것 없는 그 글이 대체 왜 인기일까?’ 하는 자아성찰적 궁금증에서 시작해서,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에 반응하는 걸까?’ 하는 마케팅적 고민을 거쳐서, ‘글쓰기란 과연 뭘까?’ 하는 존재론적 고민에 도달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매번 같은 답이 나옵니다. ‘도저히 모르겠다!’

잠깐 다른 얘기. 지니어스(Genius)라는 단어는 보통 ‘천재’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마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과 같은 놀라운 능력을 갖춘 사람을 지니어스라고 부릅니다. 불세출의 예술가이자 공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사람 말이죠.

그런데 원래 ‘지니어스’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 사람이 천재이기 때문에’ 굉장한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관장하는 신비로운 정령인 지니어스가 ‘그 사람을 찾아와서’ 창의적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결과가 좋으면 멋쟁이 지니어스가 도와준 덕분이고, 결과가 나쁘면 변덕쟁이 지니어스가 도와주지 않은 탓이란 얘기입니다. 일의 결과는 나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결과가 좋아도 자만하지 않고 결과가 나빠도 초조해하지 않는 태도를 그 옛날 사람들은 가졌던 겁니다. 고대 로마의 사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제 입맛에 딱 맞는 이런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믿으면 저의 고민도 조금은 해결될 것만 같습니다. 애초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식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 모든 것은 지니어스의 변덕에 달렸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내가 할 일은 언제라도 지니어스가 찾아올 수 있도록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결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반복되는 무반응과 실패의 늪 속에서도, 언젠가 한 번쯤은 그 분이 찾아오리라 생각하면 참을 만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지니어스가 다른 일로 바빴다고 합니다. 다음엔 도와주겠죠.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김민우 드림